작가 한주은은 스웨덴 예테보리대학(Gothenburg University)의 도예과와 찰머스대학(Chalmers University)의 응용정보공학 석사를 수학하고 스웨덴과 한국을 중심으로 동서양의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도자 예술의 세계를 선보여 왔다. 특히 그는 북유럽풍의 식기로 주목받고 있으며, 기능성을 부여한 공예작품과 심미성을 강조한 오브제작품으로 장르적 경계를 넘나듦은 물론, 최근 미디어 아트까지 작업의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도자기에 담긴 북유럽의 온기(溫氣)
한주은의 도자기에는 오랜 시간 스웨덴에 거주하며 경험한 이색적인 환경과 문화, 그리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한 대 어우러져있다. 그의 작품은 유럽인들에게는 무심히 지나쳐가는 일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일깨워주고 한국의 관람자들에게는 북유럽의 이색적 풍경을 따뜻한 온기로 선사한다. 스웨덴에서 그의 시선을 가장먼저 사로잡은 것은 집이었는데, 형형색색으로 물들어 볼을 맞대고 서있는 풍경은 무척이나 아름답고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관심은 창문을 많이 내는 건축양식이나 단순하고 우아한 가구들, 창가에 놓인 식물이나 달라하스트(Dalahäst)같은 장식품, 햇볕을 쬐며 낮잠 자는 고양이의 모습 등 집 내부의 사소한 것들로 확장되었다. 집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쉼’ 그 자체이며, 그 안의 크고 작은 요소들 또한 쉼과 여유를 중시하는 스웨덴사람들의 삶의 태도가 깃들어있는 것으로써 그가 기억하고픈 아름다운 추억의 대상이자 작품의 주요한 소재가 되었다.
우리 피카할까(Ska vi fika)?
스웨덴어로 피카(FIKA)란 ‘커피와 함께 하는 휴식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로 수세기에 걸쳐 내려오는 스웨덴 문화의 핵심 요소이다. 이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행위를 넘어 일상을 멈추고 숨을 고르는 일상의 관습으로 피카를 청하는 것은 곧 상념을 잊고 함께 현재를 즐기자는 의미를 포함한다. 한주은의 식기 중에서도 커피나 차를 마실 수 있는 컵과 티포트가 유독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 또한 이러한 연유이다. 컵을 만드는 시간은 작가 스스로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며 컵이 요긴하게 사용되는 것 또한 그에게 더할 나위 없는 보람이자 행복이다. 때문에 그는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컵을 빚음으로써 그가 경험했던 북유럽의 여유와 풍요로운 정서를 전하는 것, 즉 일종의 ‘피카’를 청하는 것이다.
한국과 북유럽이 만나는 식탁
한주은의 도자기에는 북유럽과 한국의 다채로운 요소들이 교차한다. 그가 사용하는 블루페인팅의 기원인 청화백자(靑畵白磁)는 14세기 초 중국에서 시작되어 14세기 말 조선, 17세기 일본으로 전해졌고, 당대 동양을 침략한 유럽인들을 매료시켰다. 그 중에서도 동인도회사를 소유했던 네덜란드는 청화백자 재현에 강세를 보여 유럽식 청화백자인 블루페인팅 도자기를 탄생시켰는데 이는 스웨덴을 포함한 주변 국가들에 블루페인팅 도자기가 널리 유행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역사를 감안하면 우리가 유럽의 블루페인팅 도자기에 이국적이면서도 친밀함을 느끼는 것이 우연만은 아닐 것인데, 실타래처럼 얽힌 역사를 뒤로하고 오늘날 한주은은 그만의 미감으로 새롭게 재해석된 한국적 블루페인팅 도자기를 선보이고 있다. 그가 자주 사용하는 나뭇잎과 줄무늬는 스칸디나비아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지만 여기에 한국 전통회화의 주요 소재인 목단화나 한글자음을 패턴처럼 함께 사용하기도 한다. 도자기 가장자리에 한옥 처마 끝 막새기와의 형상을 장식처럼 둘러 그린 것은 한국전통에서 차용한 것이지만 마치 서양의 레이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보는 이에 따라 다른 시각으로 감상하게 되지만 공통적으로 일상을 풍요롭게 하고 대중에게 사랑받는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다.
그는 나아가 더욱 한국적이고 편안한 형태의 친근하면서도 새로움을 주는 블루페인팅 기법으로 그만의 북유럽풍 도자기를 선보이고자 한다. 싱그러운 녹음이 짙은 7월, 우리의 식탁 위에서 충만한 온기를 전하는 한주은의 도자기를 통해 행복한 시간을 누려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