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령

선 위에 생명을 담다

2022. 11. 8(화) ~ 12. 3(토)

전시 소개

선 위에 생명을 담다

선 위에 생을 담아내는 작가 김령

김령은 대학에서 프로덕트 디자인을 전공하고 미국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RISD·Rhode Island School of Design)에서 가구 디자인 석사과정을 밟은 디자이너이자 조각가이다. 대학원 시절 강의를 개설할 만큼 나무를 다루는데 능한 그는 목조 가구로부터 생동감 넘치는 입체조각, 부조작업에 이르기까지 공예와 추상조각을 넘나드는 다양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 전시에 서는 생명력을 담지한 나무 소재와 도자의 단정하고 유려한 선형을 빌어 생‘의 의미를 담아낸 신작들을 선보인다.

나무

김령의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생(生)’이며, ‘생’은 곧 나무 소재와 선, 도자기의 형상을 통해 드러난다. 먼저 나무는 김령의 모든 작품의 주요 소재로써 그 자체로 생명력을 내 제한 상징적 대상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작가에게 나무는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았던 생명체를 의미하지만 뿌리가 잘려나가 생명력이 소거된 상태로 도착한다. 그리고 다시 작가의 손에 의해 가공되어 조형적인 형태를 갖춘 작품으로서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는다. 나무에 새겨진 결과 나이테, 옹이와 같은 흔적들은 나무가 살아온 세월과 그간 겪어온 모든 풍파를 아로새긴 생애의 기록이며, 작가의 개입은 의지를 통해 부단히 다듬어지고 발전해가는 삶의 과정과도 닮아 있기에 나무는 인간 ‘생’에 대한 은유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 대해 작가는 영혼을 불어넣고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행위라 말한다. 즉, 나무를 파내고 형태를 뽑아내는 과정은 김령에게 있어 물질에 깃든 생명력을 찾아내는 길이자 ‘생’의 의미를 가시화하기 위한 하나의 방식인 것이다.

“나무: 색, 결, 무늬 그리고 외형. 격렬하지도 거세지도 않지만, 시간의 퇴적물로 쌓인 나이테를 보면 그 나무가 지내온 시간을 짐작하고 느낄 수 있다. 흘러간 것에 대한 기억. 온도, 습도, 그리고 시간의 기록. 그리고 그 추억이 향수가 된 듯 나무 는 뿌리로부터 잘렸음에도 끊임없이 조용하고 잔잔하게 움직이고 뒤틀린다. 다른 면의 선들이 각자의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하나의 큰 실루엣으로 만난다. 그 선들 속에서 날카로움과 부드러움이, 나무의 간결하면서도 시름이 얽혀 있는 아련한 향기를 그리고 있다…천천히 들여다보면 나무만큼 그 생명이 살아온 기억이 느껴지는 것이 있을까. 주변 환경의 작은 변화에도 나무는 달라진다.”

작가노트 중

한편 김령의 작품세계 전반을 살펴보면 그가 ‘선(line)’이라는 조형요소에 부단히 천착해왔음을 알 수 있다. 김령의 작업전체를 아우르는 또 하나의 주요 특징으로 주목되는 ‘선’은 유려한 곡선형으로 표현되며 작품 전체에 볼륨과 형태감을 부여한다. 그는 시간의 퇴적물을 상징하는 나무를 깎아 길고 가느다란 목봉을 만들고, 이를 쌓아 조립한 뒤 도자기의 형태로 깎아내고 거친 표면을 깔끔하게 다듬는다. 이렇게 나무를 깎아 만든 여러 개의 선은 만남, 교차, 갈라짐으로 엮어져(Woven line) 흐름을 이룬 하나의 작품이 되는데, 선의 형태에 입각한 이러한 오브제 작업 은 작가가 직접 경험한 인연 – 맺어지기도 하며 끊어지기도 하고 보이지 않게 연속되고 있던 관계와 같은 – 을 의미한다. 이는 자신을 둘러싼 다양한 환경, 그리고 타자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인간이 살아가는 ‘생’이라는 현상, 그 보이지 않는 얽힘을 시각화하기 위해 김령이 기용한 형식인 것이다. 선은 때로는 나무의 결, 사방으로 확산되는 뿌리나 가지의 형상을 닮기도 하며, 한데 뭉쳐진 목봉 덩어리는 나무의 육중한 볼륨감 안에 흐르는 생명력의 율동감을 가시화한다. 이처럼 김령은 나무 자체의 물성에 가장 적합한 형태인 ‘선’을 조형요소로 채택함으로써 그것이 함축한 생명의 힘을 구현한다. 물질이 조각의 재료가 되는 순간 살아 있는 생명체 로 환생하게 하는 것이다.

도자기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도자기의 형태를 차용한 작품들을 대거 선보인다. 독실한 불교 신자인 작가의 어머니는 인간이 ‘영혼(체)을 담는 그릇’이라고 입 버룻 처럼 말씀하시곤 했 는데, 김령은 여기서 도자기가 지닌 ‘용기;container’라는 성질과 형태에 집중하였다. 작가의 시선에는 나무와 사람 또한 지난 세월과 영혼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도자기의 형상이 상 부와 하부로 나뉘어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가 수직으로 서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외형과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만들어진 도자기는 표면이 매끈하고 반짝이지만 점차 환경과 시간의 영향 속에 윤기를 잃고 상흔을 입는다. 하지만 그 빛깔은 깊어져간다. 이처럼 사람은 각자의 시간을 살고 그 시간의 쌓임이 현재의 개인을 존재하게 한다. 한편 선형의 목봉을 뭉쳐놓은 덩어리를 깎아 만든 양각의 도자기의 형상, 또는 반대로 목봉 덩어리로부터 음각으로 떨어져 나온 도자기의 형상은 공간을 비우거나 메우는 대응관계에 있다. 부재와 실재는 존재를 드러내는 동시에 존재의 흔적을 의미하는데, 김령은 이러한 작업을 통해 개인의 ‘생’ 뿐만 아니라 현존(Presence)은 채움으로써 증명되는가, 비움으로써 증명되는가와 같은 보편적 생명에 대한 존재의 의미를 고찰을 하고자 한다.

“나의 작업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의 실체와 존재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무수한 물질들에 둘러싸여 감각을 통해 인지하며 세상을 살아간다. 공기와 같이 우리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항상 내 공간 안에 있을 물질 같은 것들은 특별한 나의 인식 없이 자연스럽게 그리고 당연하게 세상에 존재한 다고 느낀다.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이 공기와 같은 것들을 다른 이들도 나와 똑같이 인식할까. 현실이 아닌 가상공간에서 모두 똑같이 인지한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한다고 여겨질 수 있는 것인가, 내가 인식하는 물질이 완전함이 아닌 파편이라면 과연 그것의 참과 거짓을 논할 수 있을 것인가.

작가노트 중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으로부터 불교사상을 익숙히 접해온 김령의 시각은 조각을 살아 있는 유기체로 보는 생명주의적 예술관, 그리고 예술행위를 자연의 일부로 보는 동양의 전통 예술관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 이는 비단 자연계에서 선택된 소재와 내용을 표현수단과 주제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뿐만 아니라 선형의 가느다란 나무들과 꽉 찬 도자기 형상의 매스, 텅 빈 캔버스의 여백, 수직적 견고함과 이를 깨는 수평적 유동성, 매끄러운 곡선과 거친 물감의 붓질 등 대립을 이루는 요소들 간의 팽팽한 긴장과 균형미에서도 알 수 있다. 하나의 나무에서 뽑아낸 목봉들, 곧 선들을 모아 면을 이루고 이를 다듬어 도자기의 형상으로 깎아내는 물리적 전개과정은 세포 가 분열하여 하나의 개체를 이루고 또 소진해가는 생명의 탄생과 성장과정을 닮았다. 오늘 우리는 김령의 캔버스 위에서 베르그송이 말한 ‘생의 약동(élan vital)’의 시각적 구현을 짐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

글 윤아영

작품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