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일지상 合一之象 : 서사敍事를 응축한 오브제
작가 김령의 작품은 캔버스 위에 ‘그릇〔器〕’의 ‘상(象, image)’을 결합한 오브제를 제시한다. 김령의 오브제는 ‘합일(合一)의 상〔合一之象〕’으로서 자연과 인간의 지속적 관계를 증거하는 서사(敍事)를 응축한 작품이다. 매체로서의 물푸레나무는 평판으로, 작가에 의해 목봉으로 정제되어 긴 수행과도 같은 시간을 응축하여 담은 오브제가 되어 작가가 걸어온 삶의 흔적들을 오롯이 하나의 ‘상’에 담아내고 있다.
작가는 자연의 생성과 인위에 의한 멈춤, 그리고 새롭게 재가공하여 생성되는 청자와 백자, 막사발이 담긴 오브제에 의해 우리들이 생성하는 삶을 담는다. 물푸레나무는 인고의 세월을 담아 ‘스스로 그렇게’ 나이테의 결을 담고, 작가가 하나하나 다듬은 목봉으로 재탄생한다. 김령 작가의 독특한 매체인 목봉에는 옹이가 지며 큰 나무로 성장한 세월이 흔적으로 담겼고, 보이지는 않아도 작가의 수행과도 같은 집약적 노동을 느끼게 하는 정제된 기하학적 선형이 상징적이다. 무념무상의 반복 작업으로 탄생한 절제된 선형의 목봉은 캔버스 위에서 그 인연들을 짜임으로 형상화하며 이야기를 담는다. 서사를 담은 ‘그릇’의 상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며 얽혀있는 인연의 숨결을 담고 틈을 열어둔다.
숨;결 _ 공간을 엮다
도자기 ‘상’의 짜임은 캔버스 바탕과 연결되며 호흡한다. 평면의 캔버스는 그 지지대로서 역할하며 입체의 ‘상’과 숨결을 공유하며 공간을 열어둔다. 자연은 인위를 받아들이고 인위는 숨을 불어넣으며 그 결을 공유한다. 작가가 창작하는 공간은 자연의 ‘숨’을 인위적인 다양한 ‘결’로 조직화하며 생명을 불어넣는다. 캔버스 위에 올린 입체의 ‘상’은 평면 공간을 3차원의 오브제로 조형하면서 ‘숨;결’에 의한 틈으로 공간의 차원을 엮고 있다. 선은 면으로, 면의 결합으로 생성된 선은 틈새 공간으로, 선과 면이 넘나들고 입체와 평면이 넘나들며 비워진 틈과 채워진 오브제가 생성하는 ‘상’은 비워지고 채워지는 공간 짜임의 변주에 의해 다양한 시공간적 차원을 재구성한다. 작가에 의해 인위로 드러나는 자연의 흔적, 변이를 위해 담은 자연의 숨결은 우연과 필연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구현한다.
바라보기 _ 컨텍스트의 변화
인연의 상징적 구현은 실제 생활에서 ‘사용하는’ 용기(Container)로서의 용도가 공간을 엮은 ‘바라보는’ 상으로 대상화되는 컨텍스트의 변화에서 비롯된다. 사용하는 것에서 바라보는 것으로의 대상화를 위해 작가는 공간에서 선형으로 쪼개지며 새로운 짜임새로 엮여나가는 관계지움의 오브제로 컨텍스트를 변화시켰다. 그에 따라 오브제는 직접적 사용의 용도보다는 거리를 두고 관조하는 대상으로 변화했다. 도자기와 막사발의 상은 과거의 시간을 불러들이고 현재의 삶을 담아내며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망각과 기억, 삶의 흔적들에 대한 정교한 해체와 결합, 과거를 소환하고 현재를 재결합하는 반성적인 조형 오브제로 적극적으로 제시된다. 여러 차원의 시공간으로 엮인 그릇의 상은 “모든 것은 모든 것에 연결되어 있다”는 성찰을 담아 그 용기에 담았던 한국인으로서의 삶과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한국인의 ‘멋’으로 흐르게 한다.
응축_ 서사(敍事)를 담다
김령의 오브제는 한국인으로서의 삶과 삶을 녹여낸 ‘멋’의 경험적 서사를 응축한다. 물푸레나무의 나뭇결은 세월을 오롯이 담고 작가의 ‘Line’으로 ‘shape’으로 ‘form’으로 생성되며 말을 건넨다. 목봉은 오랜 시간을 나이테로 새기고 시간의 잔해로서 결로 드러내어 현재로 소환된다. 켜켜이 깎이고 반복적으로 채워지는 목봉들은 개별의 시간을 견디고 그 자체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현재에 제시된 모습과 마주하며 이야기를 채운다. 하나의 서사로서의 목봉은 그 제각각의 위치에서 전체의 부분을 이루며 경험적 시간들을 증거한다. 자연의 시간은 불연속적으로 해체되었지만 작가가 오브제에 담은 시간 속에서 끝없이 새롭게 생성된다. 좁고 긴 터널 같은, 또는 넉넉하고 편안한 삶의 공간을 지나는 개별적 존재로서의 우리는 각각의 서사를 자신의 시간으로 얽어 그릇에 담는다. 과거는 현재에 새로운 ‘결’로 떠오르고 ‘숨;결’로 그 생명성을 부여받으며 작가는 우리들로 하여금 미래를 꿈꾸도록 한다. 개별적 서사는 해체되어 흩어지고 새어나가면서도 스미며 응축되어 정체성으로 남는다.
자연과 인간 _ 상으로 합일(合一)하다
대상의 해체와 재결합, 미완에서 완성으로 김령의 오브제는 정체성을 드러내며 합일을 추구한다. 다양한 용기로 응축되는 서사들은 작가에 의해 ‘합일의 상〔合一之象〕’에 도달한다. 작가의 노동과 감정과 시간을 응축한 오브제는 호방한 현대적 감각의 붓자국으로 ‘일(一)’의 경지로 통합된다. 도자기의 상을 통해 한국인의 멋스러운 삶을 드러내는 작가는 그 기형과 ‘하나’로 통합되는 붓터치에 담긴 색과 함께 우리네 풍류와 품격을 담는다. 삶의 소탈함과 담담함을 읖조리듯, 그 의지의 비장함을 드러내기도 하며 삶의 찬란함과 생의 환희로 그 충만함을 아우른다. 색을 입은 오브제는 단 한번뿐인 우리네 삶 속으로 강렬하게 다가서며 그 의미를 되돌아보도록 이끈다.
작가 김령의 작품세계는 이렇듯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합일’에 의한 한국인의 삶을 담는 오브제로 구현했다. 작가에 의한 ‘합일의 상’은 구체적으로 보이는 시각적 대상의 ‘상’에서, 우리의 시간과 경험을 담은 종합적 오브제의 상징적 ‘상’으로, 더 나아가 경험을 넘어서는 상상적 ‘상’을 담는다. 작가는 짜임으로 엮어낸 모든 인연을 ‘합일의 상’ 속에서 끊임없이 응축한다. 작가는 오늘도 자연과 합일되는 예술 공간에서 과거의 시간을 현재화하며 우리 앞에 도래할 미래를 끊임없이 현재화한다. 층층히 결합되는 상이 작가 김령의 작품에서 영원한 예술적 가치로 빛나기를 기대해본다.
김연주(미술비평, 단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