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석홍의 작업에는 항상 제주도가 숨 쉬고 있다. 그리고 그가 다루는 주제들도 거창한 외침보다는 우리의 소소한 일상이 중심이 된다.
하석홍의 작업은 대략 2000년도 초반을 기점으로 구분되는데, 회화 작업이 중심이던 이전, 그리고 이후에는 오브제와 설치 중심의 작업이 주류를 이룬다. 그리고 이번 전시는 그러한 후반부 작업의 최종적인 성과물이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전시이기도 하다.
하석홍은 과거 “끼니”,“화석” 등의 평면 작업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그릇, 사발 또 음식물 등을 표현하는 작업이었다. 마치 지나간 시대의 화석의 느낌이 나는 그러한 작업들은, 시간이 흐르면 퇴색할 수밖에 없는 소소하고 가벼운 일상에 대한 환기였다. 발전하는 문명은 우리의 일상 삶을 시계의 정확한 초침으로 분절하면서 삶에 대한 인간 본연의 모습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단절된 인간관계, 소외 등은 그러한 현대적 삶의 부산물이며 우리는 항상 근원적인 존재의 의미를 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석홍의 작업은 그러한 잊혀지고 망각된 우리 본래의 순순한 삶을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하석홍은 마치 고고학자처럼 우리 삶에 은폐된 근본적이며 소중한 것들을 복원시키고 발굴하였다. 그래서 그의 작업들은 진지했고 우리에게 엄중한 목소리로 “너 자신을 돌아보라!” 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2.
이번 전시는 작가가 직접 제작한 돌을 소재로 평면, 오브제, 설치, 자동차 변형 작업 등이 선보인다. 과거의 평면 작업과는 다르게, 2000년대 초반에 하석홍은 설치와 오브제 등의 작업으로 자신의 작업을 확장하였다. 2005년 전시에서는 “음식은 예술이다” 라는 주제로 요리와 미술을 결합한 퍼포먼스까지 보여주었다.
그즈음에 하석홍은 제주도의 돌에 주목한다. 파도에 씻겨진 조막만한 알작지 몽(夢)돌, 서귀포 보목리선(仙)돌, 우도 산호석(珊瑚石), 성산포 녹색 빛깔돌. 제주의 돌들은 빛과 바람, 오름, 해안가, 산중턱 등 놓이는 곳에 따라 색도 모양도 우리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러한 제주의 돌에서 하석홍은 역사를 읽어내며, 더 근원적으로 우리 삶의 근원과 문명의 원형에 대한 숙고를 하는 것이다.
“돌은 척박(瘠薄)이 새겨진 문신(文身)이며 문명(文明)의 시작이자 문명(文明)의 미래다”라고 작가는 이야기 한다. 특히 그가 제주도의 돌에 주목한 것은 제주도 자체가 돌로 이루어졌다는 점과, 다른 지역의 돌과 달리 태고에 가까운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돌은 모든 문명의 원천이다. 돌 속에 포함된 다양한 광물 성분들이 바로 인간의 문명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돌에 대한 탐구는 바로 인간 삶에 대한 탐구이며 존재에 대한 탐구인 것이다.
그러나 하석홍의 작업 돌작업은 묵직한 무게로 진행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새로운 상상을 한다. 제주도는 그의 캔버스이며, 그 캔버스를 하석홍 본인이 제작한 돌로 채워나가는 것이다.
3.
하석홍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처음 느낀 점은 작가의 작업실이 아니라 소규모 공장의 작업장을 방문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각종 기계 장비들과 널려있는 인조석들은 미술작가의 작업장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그만큼 하석홍의 돌 제작 작업은 복잡한 과정과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작업이다.
인조석들은 딱딱하기도 하고 부드럽기도 질감도 다양한 형태다. 다양한 플라스틱 소재들은 가공과 변형을 통해 작업의 재료가 되고, 그러한 재료를 작가의 상상력과 지속적인 작업을 통해 제주 화산석을 닮은 인조석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것들은 단순히 가공된 생산품이 아니라 바로 그 자체의 작가의 영혼이 깃든 작품이며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하석홍에게서 돌은 생명의 중심이지만 광기어린 사회와 물질문명에 대한 반대의 시금석이기도하다. 이러한 돌은 세상에 대한 저항과 냉소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석홍은 예리한 절단 보다는 비틀기를 택한다. 작가는 돌들을 하늘에 띄우기도 하고 물 위에 떠내려 보내기도 한다. 그의 돌들은 중력을 거부한다. 마치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세련되게 돌아가는 우리의 일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의 돌들은 거침이 없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자동차에 박히기도 한다.
이번 전시는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된다. 첫째는 벽면 작업으로, 돌의 부분 형태들이 캔버스 위에 부착되거나 이미지화 작업이다. 두 번째는 설치작업으로, 전시장 중앙에 다양한 형태의 돌들이 모여지거나 흩어진다. 세 번째는 그가 특허를 받은 개조된 자동차 작업이다. “굴러가는 자동차와 박혀있는 石, 박힌 石에 굴러온 차”, 그의 자동차는 첨단 디자인의 세련된 형태가 아니라 돌들이 박힌 투박한 형태가 강조되는 작업이다.
4.
하석홍은 이번 전시에서 본격적으로 자동차 작품을 선보인다. 그의 자동차의 특징은 단순한 튜닝의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운행할 수 있는 자동차에 그의 인조석들을 결합시키는 것이다. 세련된 금속제 외관에 투박한 돌의 조합은 그 자체가 어색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돌작업들도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다. 여기에서 하석홍 작업의 특징이 나타난다.
하석홍의 돌은 인위적인 조형 형태를 거부한다. 가장 근원적이며 자연적인 모습을 강조한다. 마치 진짜 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하석홍은 그러한 ‘실제-가상’의 구분에서 나오는 차이에 대한 담론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자 한다. 사회적인 인위성뿐만 아니라 예술의 인위성, 세련됨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한 거부를 통해 그는 새로운 예술을 꿈꾼다.
그의 몽상은 돌들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고 미래로 나아가기도 한다. 그는 투박한 돌에서 인위적이지 않은 자유로운 정신을 읽어내고 있다. 그래서 그의 자동차는 세련됨을 거부한다. 빠름과 세련, 날렵함으로 대변되는 현대의 삶은 우리를 편안하게 하지만 결국 우리의 삶을 갉아먹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던진 돌은 하늘로 한없이 뻗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중력을 통해 되돌아와 우리의 뒤통수를 때린다. 하석홍의 자동차는 그러한 우리의 어리석음과 이중성을 고발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돌은 중력을 거부하는 조형적 공간을 모색하고 그러한 공간을 우리의 생활공간으로까지 확장한다.
이제 하석홍의 자동차는 제주도에만 머물지 않고 바다로 나아가고 육지로 나아간다. 더 이상 인위적인 장애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끔 작가가 돌을 타고 한라산을 넘어 다닌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들리곤 한다.
김진엽(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