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실에 놓인 윤두진의 화려한 조각상들은 현실세계로부터 그들이 살아가는 신화 속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홍익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수학한 조각가 윤두진은 이상화된 인간의 모습에 방점 둔 작업을 일관되게 발전시켜 왔다. 그가 빚은 초월적 인물상과 그들이 살아가는 장대하고 과감한 신화적 세계의 풍경은 보는 이를 압도하는 한편 아름다움과 강인함을 갈구하는 인간의 본능과 이상, 그리고 그 너머 인간이 지닌 불완전성과 결핍을 직시하게 한다.
초인(超人)들
어린 시절 한번 즘 꿈꾸었던 영웅의 모습을 현실세계로 소환한다면 이들과 같지 않을까. 섬세하게 조각된 남녀 인물의 육체는 젖과 꿀이 흐르는 에덴의 천사들처럼 아름답고 매끈하며 완벽하며 전지전능한 힘을 지닌 신들처럼 땅과 하늘을 오가며 피조물들을 호령한다. 힘을 과시하듯 과장된 동세와 도드라진 근육, 투구를 쓰고 창과 방패 든 채 날개를 달고 용맹하게 말이나 용의 등에 올라탄 이들의 모습은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제우스나 아테나 같은 전쟁의 신을 연상하게 한다. 또한 기계와 결합된 신체는 흡사 전쟁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떠올리게도 한다. 윤두진은 상상 속의 영웅들을 현실감 넘치는 모습으로 우리 눈앞에 불러들였다.
그러나 이들이 처음부터 초인의 모습이었던 것은 아니다. 윤두진의 인물조각 시리즈는 2000년대 초 일종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인간의 다면(多面)을 포착한 ‘Mask Series(2000년대 초)’로 시작되어 2000년대 중반 환자들과 많은 시간을 보낸 경험을 계기로 불완전성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욕구를 기계와 신체가 결합된 초인의 모습으로 표현한 ‘Protecting Body Series’(2006~08), ‘Guardian Series’(2017~)로 발전되었다. 이상적 인간상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이 구체화되면서 작품의 크기와 규모가 두상-흉상-전신상으로 확대되었고, 가면을 쓴 얼굴은 점차 힘이 넘치는 초인의 모습을 갖추어 갔다. 그러나 이들은 신이기 보다 미적으로나 기능적으로나 인간의 불완전성을 극복한 이상적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 한 결과물에 가깝다. 아름다움과 강인한 힘을 갈구하는 인간 내면의 원초적 욕구가 투영된 온전한 작가의 상상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이러한 이상형의 극단은 우리의 불완전성을 보다 극명하게 일깨워줌으로써 인간이 지닌 결핍의 실체를 드러내는 기제로 작동한다.
네수스 레우케(Nesus Leuce, 하얀섬)의 초대
최근 선보인 ‘Elysium Series’(2020~)는 기존 작업에서의 초인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부조방식으로 구성하여 더욱 확장된 세계관을 보여준다. 윤두진은 이 세계를 ‘엘리시움(Elysium)’이라 명명하였는데 이는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신, 또는 신격화된 인간들이 머무는 일종의 사후 세계이다. 그 중에서도 인간계 영웅들, 덕 있는 자들의 영혼을 위해 마련된 엘리시움은 ‘극락세계, 행복이 가득한 낙원, 지복을 누리는 땅, 이상향’이라는 의미로 망각의 강 레테(Lethe) 너머 하데스(Hades)가 다스리는 지하세계의 낙원이다. 이곳은 낮에는 수평선 위에 있던 해가 밤이 되면 수평선 아래의 지하세계인 엘리시움으로 내려와 이승과 밤낮이 바뀌었을 뿐 결코 어두워지지 않는데, 때문에 고대인들은 이곳을 ‘네수스 레우케(Nesus Leuce, 하얀 섬)’라 불렀다. 순백색으로 조각된 윤두진의 초인들과 이들을 둘러싼 엘리시움은 현실이라는 대지 위에 세워진 하얀 섬, 바로 네수스 레우케의 시각화 버전에 다름아니다. 작가의 손끝에서 탄생한 초인들과 하얀 섬은 모든 죄악이 소거된 무결함에 대한 인간의 갈망을 장대하고 몽환적인 아우라와 숭고미로써 기화해낸다.
한편 부조와 환조를 결합한 윤두진의 신선한 시도는 기존 환조작업의 제약을 넘어 작품 안팎의 서사를 보다 입체적으로 구축해낸다. 특히 부조 장르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국내실정에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부조 양식의 특성을 수용하고 변형한 과감한 시도는 탄탄한 서사, 완성도와 더불어 그의 작품이 주목되는 이유이다. 예컨대 부조 프레임 안에 갇힌 인물의 등에서 우리 눈앞의 공간으로 펼친 날개는 이 인물이 벽면을 뚫고 나와 현실세계로 날아들 것만 같은 공감각적 체험을 제공한다. 또한 날개 깃 하나, 하나의 깃든 섬세한 기교는 작품에 충만한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어쩌면 윤두진 작업의 신화적 서사는 NFT, VR(Virtual Reality,가상현실)과 같은 최신미디어를 통해 더 효과적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상의 세계를 우리가 숨 쉬는 현실세계로 소환함으로써 관람자가 오감으로 작품을 느끼게 하는 윤두진 작품만의 특성은 예술작품과 관람자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대체할 수 없는 실존적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1990년대의 사이보그로부터 작금의 AI와 메타버스까지. 과학이 발전할수록 현실세계를 닮고자하는 가상공간의 형이상학적 욕망은 우리를 혼돈에 빠트릴 만큼 첨예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에 역행하듯 윤두진은 우리를 전혀 다른 맥락 속으로 이끈다. 그가 낳은 초인들과 그들이 살아가는 하얀 섬의 풍경은 고대 신화나 애니매이션, 게임의 한 장면처럼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인간보다 더 인간처럼 보이려는 동시대 욕망을 거슬러 인체와 결합된 날개, 다리, 팔 등의 기계부속들은 자랑이라도 하듯 과장되어있다. 이처럼 그의 작업은 아름다움과 힘에 대한 인간의 욕구 드러내기를 더 이상 망설이지 않는다. 오히려 솔직하고 과감한 조형언어를 통해 형상화함으로써 욕망(慾望)의 부정성을 갈망(渴望)의 긍정성으로 치환하고 우리의 갈증을 시원스레 해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