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항아리 K-아트의 중심에 서다

無欠無餘​

지강 김판기 작가 개인전

2022. 05. 06 ~ 2022. 05. 30

작가 노트

無欠無餘의 세계
모자름도 남음도 없다

달항아리를 완성해 가는 작업은 작품을 만들고 제어하려는 지점을 넘어서 졸(拙)과 박(樸)이 보여주는 무흠무여(無欠無餘)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순간이 가장 귀하다.

아름다움의 끝에는 진실함을 발견하는 길이 있음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그 길에는 전통에 대한 경외와 더불어 전형화된 인습, 권위 같은 것들과의 긴장이 존재한다.전통이란 눈에 보이는 모습 뿐만 아니라 그 모습을 지탱하는 정신에 있음이기에 고민하게 된다. 일상성에서의 채득된 디테일에 접근치 못하고서는 고유의 깊이를 가늠하기는 매우 어렵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축적된 경험이야말로 집약의 결정체라고 믿기 때문이다.
도예가 지강 김판기

작가 인터뷰

김판기 작가는 40여년 간 도예의 길을 걸어온 이천의 대표 도예작가다. 1983년 도예를 배우겠다며 무일푼으로 이천의 가마 작업실을 찾아 입문했다. 이후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를 아우르는 영역을 구축하며 명성을 쌓아왔다.

수상 이력도 화려하다. 2000년 동아공예대전 대상, 2008년 경기도 공예품 경진대회 금상, 2008년 유네스코 우수 수공예품 지정, 2012년 광주 백자공모 전 대상 등. 2016년에는 이천 도자기 명장에 선정됐다. 그의 작업실 ‘지강도요’ 는이천도예촌에20년 이상 터를 잡고있다.

지강도요(之江陶窯). 명인의 스승이 지어준 작업실의 이름. 강물처럼 유유한 생을 산다는 뜻이다. 작품을 만듦에 있어서도 서두르지 않고 도도하게 임한다는 것. 그의 작업 스타일에서도 이처럼 솔직하고 순수함이 드러난다. 화 려한 기교나 색채보다는 대토와 유약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방향을 추구한다. 전통 속 본질과 모던 사이의 조화는 그의 끝없는 화두.

“우리 백자 달항아리는 대토에서 우러나오는 그 본연의 색깔을 중시합니다. 요새 트렌드는 아주 매트하고 하얀 질감을 선호하기도 해요. 그럼에도 조선백자는 일본이나 중국 자기와 달리 근본에서 우러나오는 색을 중시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래야 더 깊이가 있고, 그 안에서 이야기가 스며나오죠.”

그가 생각하는 달항아리의 미학은 수치화되고 공식화된 서구식 기준과는 거리가 멀다. “청자는 색, 백자는 형이 우선입니다. 잘 생겨야 해요.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워야죠. 그건 한마디로 정의할 수가 없어요. 이 달항아리도 굽이 입보다 작아야 한다는 정도 외에는 모두 조화로움의 영역이죠.”

20세기 초, 영국의 유명한 현대 도예가인 버나드 리치는 경성에서 달항아리 를 구입 후 귀국하며 “나는 행복을 안고 간다”고 표현했다. 기나긴 팬데믹의 밤이 지나고 행복을 품에 안은 달항아리가 떠오르는 봄. 

K-아트의 중심 달항아리

달항아리는 현재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K-아트의 중심에 서 있다. 소설가 알랭드 보통은 저서에서 “달항아리를 보면 강렬한 감동과 용기를 얻는다” 고 표현했고, 세계적인 디자이너 조나단 앤더슨도 달항아리 20점을 구입해 세 계 여러 곳의 로에베 매장을 꾸몄다. 평창올림픽 때는 달항아리 성화대가 세 계인들에게 대한민국의 상징으로 각인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BTS RM(김남준)도 달항아리 컬렉션을 SNS를 통해 공개, 화제를 모았다.

 

“달항아리를 보면 강렬한 감동과 용기를 얻는다”
소설가 알랭드 보통

작품세계

달 항아리는 조선백자이지만, 현대적이고 모던한 느낌도 풍긴다.

“달항아리는 자유분방함이다. 제작과정에서 생기는 수축,
혹은 불을 때면서 생기는 변화가 자연스러움을 만들어 낸다.
무게나 중력에 눌려 약간 기울기도 하고 그래서 달항아리는 옆으로 돌려도 다른 모양이 나온다. 그게 멋이다.”

가장 한국적인 오브제

아트 컬렉션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컬렉션이 공개되면서 업계가 더욱 활기를 띠는 모습이다.

‘리 컬렉션’은 수조원 규모의 라인업으로 일찌감치 화제를 모아왔다.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과 현대미술 걸작들도 화려하지만, 역시 국보와 보물만 한 컬렉션은 없을것이다. 그 중 가장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바로 국보309호 ‘백자  달항아리’다.

누군가 한국의 미학을 물어보면 말없이 보여줘도 될 듯한 모습이다. 겸손하지만 비굴하지 않고, 인위적이지 않으면서도 완전한 선을 이루고 있다. 생각해보면 삼성의 주력 제품인 반도체와 도자기 모두 흙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흔히 반도체 산업을 한국인의 정서와 맞아떨어진다고 평하는데,몇세기 전 조선백자를만들었던 그 정교하고 섬세한 기술이 이어져 내려온 것은 아닐까.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시대. 달항아리는 지극히 한국적인 오브 제다.

글 원호연(에디터)